티스토리 뷰
목차
1919년 4월 13일,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이는 일제 강점기 하에서 우리 민족이 국가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 실현을 목적으로 조직한 최초의 망명 정부이며, 훗날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적 기초로 이어졌다.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을 통합하고, 외교적으로 우리 민족의 존재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중심축 역할을 했다. 오늘날에도 그 정신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배경
20세기 초, 한반도는 격동의 시기를 겪고 있었다. 1910년 한일합병 조약 체결 이후 조선은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했고, 조선인의 정치·경제·문화적 자유는 완전히 박탈되었다. 그럼에도 민족주의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고, 1919년 3월 1일 전국적으로 벌어진 3·1운동은 비폭력 독립운동으로 전 세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조직적인 중앙 정부 없이 각지에서 분산적으로 이루어졌던 3·1운동은 체계적인 독립운동으로 연결되지 못했고, 이후 이 운동의 열기를 한데 모아 지속적이고 외교적인 독립운동의 중심체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커졌다. 이로 인해 해외 독립운동가들이 상하이로 모여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되었다.
내용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 프랑스 조계에서 한성정부, 대한민국노인동맹단, 신한청년당 등 여러 독립운동 단체가 통합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삼권분립에 입각한 민주공화제를 채택하였다. 이는 한민족 역사상 최초의 공화정 수립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임시정부는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선출하고, 헌법과 정부 조직을 정비하며 독립운동을 체계화했다. 독립신문 발간, 무장 독립군 연계, 외교활동 전개 등 다양한 방면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고,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바탕으로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제시하기도 했다. 재정적 한계와 일제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는 광복 직전까지 27년간 존속하며 민족의 독립 의지를 상징했다.
시사점 및 의미
- 대한민국 정부의 법통적 기초: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시된 법통의 출발점이다.
- 민주주의의 첫 실험: 입법-행정-사법이 구분된 공화제 구조를 통해 민주주의 기반을 마련했다.
- 국제 외교의 시발점: 외교적으로 독립 의지를 알리며 세계 무대에서 한국인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 통합의 정치적 의미: 다양한 이념과 단체가 연합하여 구성된 정부로서 국민통합의 모범을 보였다.
결론
4월 13일은 단순한 과거의 기념일이 아니다. 이 날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일제에 맞선 민족 자주정신, 국민 주권, 민주공화제 원칙, 외교적 자립의 초석을 세운 역사적 이정표였다. 오늘날 우리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은, 이 날의 의미를 더욱 깊이 새기게 만든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미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